“해수욕장에서 인공호흡을 하다, 제 삶이
다시 시작됐습니다”
— 완전히 무너졌던 제가
또 다른 생명을 붙잡으며 깨달은 것들

1. 불 꺼진 방에서 멈춰 있던 삶
2008년 6월, 저는 사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.
숨은 쉬고 있었지만, 마음은 바닥 끝까지 가라앉아 있었죠.
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고,
그때 느낀 감정들은… 어떤 단어로도 담을 수 없었어요.
분노, 수치심, 허무함, 공포, 절망.
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와 제 안에서 뒤엉켰습니다.
문소리만 나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,
밖에 나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.
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어요.
“너는… 의자에 앉을 자격도 없는 놈이다...”
불 꺼진 방에서
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주저앉아
며칠을, 몇 주를, 몇 달을, 몇 년을
그저 그렇게 살았습니다.
기독교인이었던 저는
‘죽으면 지옥일 텐데… 그렇다고 사는 것도 지옥이고…’
그 사이 어딘가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죠.
그런데 참 이상하게도—
아주 가끔, 그래도 밥은 먹었습니다.
지금 돌아보면,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네요.
저는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…
사실은 살고 싶었는데,
살 수 있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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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. 6월 25일, 끌려가듯 세상 밖으로
그날, 교회에서 전교인 야유회를 간다고 했습니다.
저는 단호하게 말했죠.
“저는 안 갑니다. 절대요.”
하지만 목사님과 교역자들이 제게 말했습니다.
“직책이 있는데 안 갈 수는 없지요.
물에 들어가라는 것도 아니고…
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돼요.”
지금 생각하면, 저를 밖으로
조금이라도 꺼내주려던 마음이었겠죠.
그때의 저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요.
결국 고삐 끌려가는 소처럼 버스에 올라탔습니다.
도착한 곳은 강원도 ○○ 해수욕장이었어요.
사람들은 웃고 떠들었고,
저는 주차장 그늘에 앉아
삶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.
그러다—
그날,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.
3. 소리 지르는 사람들, 뛰어가는 사람들
멀리서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.
처음엔 장난인 줄 알고 쳐다보지도 않았죠.
그런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
그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어요.
그리고 저도 이유도 모른 채… 뛰기 시작했습니다.
몸이 먼저 움직이고
마음이 나중에 따라오는 이상한 순간이었어요.
도착해 보니,
해변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.
강한 이안류가 갑자기 생겨
○○대 태권도 동아리 학생 18명이
바다에 휩쓸린 상황이었어요.
13명은 겨우 헤엄쳐 나왔지만
5명은 사라졌습니다.
4. 그 순간,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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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명, 울음, 혼란…
사람들은 모두 얼어붙어 있었죠.
제 바로 앞에는
모래와 바닷물에 뒤덮인
의식 없는 여학생이 누워 있었습니다.
성도님 한 분이 인공호흡을 하려 했지만
기도 확보도, 코를 막는 것도 없이
그저 입에 바람만 넣고 계셨죠.
그 순간, 저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.
“잠시만요, 제가 할게요!”
모래를 파내 기도를 확보하고
입속 이물질을 제거했습니다.
그리고 CPR을 할 줄 아는 성도님께 부탁드렸어요.
“30회씩만 해주세요! 부탁드립니다!”
저는 바로 인공호흡을 이어갔습니다.
숨을 불어 넣을 때마다
‘퍽’ 하고 물과 모래, 온갖 이물질이 튀어나왔어요.
간호사였던 집사님이 거즈로 도와주셨고,
저는 쉼 없이 30:2를 반복했습니다.
30분쯤 지났을 때,
불과 2미터 앞에서 실종됐던 남학생이 파도에 밀려왔어요.
저는 울부짖듯 외쳤습니다.
“인공호흡 가능한 분 없나요!! 제발요!!”
하지만 다들 패닉 상태라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죠.
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.
두 생명 사이에서 어느 한쪽도 놓을 수 없는 그 절박함.
저는 모래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울었어요.
뒤늦게 도착한 119 대원이
여학생을 들것으로 옮기고 간 뒤
다른 남학생에게 옮겨 갔을 때, 대원이 말했습니다.
“CPR은 제가 할 테니, 인공호흡은 계속해주세요!”
그래서 저는… 또 이어갔죠.
5. 버스 안에서 흘러내린 눈물
그날,
경상이었던 여학생 1명을 제외한
네 명의 학생 중 세 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.
단 한 명—
제가 40분 동안 붙잡았던 그 여학생만 살아남았어요.
버스로 돌아오는 길,
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
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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눈이 아니라
영혼에서 흘러나오는 눈물 같았어요.
일주일 후 뉴스에서 들었습니다.
“혼수상태에서 의식을 회복했습니다.”
그 순간,
몇 년 동안 제 안에 쌓여 있던 어둠이
정말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.
기적처럼요.
저는 바로 짐을 챙겨
서울 ○○세브란스병원으로 달려갔죠.
그 여학생의 가족들은 울면서 말했습니다.
“당신이 생명의 은인입니다…”
저는 오히려 더 울었어요.
“아닙니다…
저는 사실 삶을 포기하고 있었어요.
그런데 이 아이가…
저를 살렸습니다.
이 아이가 제 삶의 은인입니다.
살아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.”
지금도 우리는 나이 차이는 꽤 있지만
친오빠와 친동생처럼 지내고 있어요.
그날 제가 살린 것은
그 여학생 한 사람의 생명만이 아니었습니다.
저 자신도 함께 살아났죠.
6. 그날 제가 깨달은 것들
저는 제 인생이 끝났다고 믿었습니다.
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여겼죠.
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았어요.
하지만 그날 깨달았습니다.
사람은 죽고 싶은 게 아니라…
살고 싶은데, 그 방법을 잃어버린 것이라는 걸...
그리고,
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
누군가에게는 숨이 되고, 기적이 되고,
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...
바다는 그날
소중한 생명들을 앗아갔지만
또 다른 생명 하나를 살렸습니다.
그리고… 저 또한 그와 함께 살아났죠.
♡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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혹시 지금 너무 힘드신가요?
온몸과 마음이 금이 간 것처럼 아프신가요?
살고는 있는데
사는 것 같지 않나요?
죽고 싶은 마음이
가끔이 아니라
매일같이 찾아오나요?
저도 그랬습니다.
정말로요.
하지만 믿어주세요.
당신 안에는 아직
작은 불빛 하나가 남아 있어요.
그건 “죽고 싶은 마음”이 아니라
사실은 살고 싶은데 방법을 잃어버린 마음입니다.
그리고 이 말을
진심으로, 마음 깊은 곳에서 드리고 싶습니다.
지금 당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
누군가에게는 이미
기적이고, 공기이고, 이유예요.
저처럼요.
그러니 부디—
정말 부탁드립니다.
살아 있으세요.
그 자체로 귀합니다.
그 자체로 필요합니다.
반드시 누군가에게 그렇습니다.
그리고 언젠가
당신도 이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.
“아… 내가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...”
2008년 6월 25일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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